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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11월 7일, 미국 뉴욕의 이스트리버 항구는 이른 겨울의 차가운 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 282톤급 브리그 범선 메리 셀러스트호(Mary Celeste)가 이탈리아 제노바를 향해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배는 원래 아마존(Amazon)이라는 이름으로 1861년 캐나다 노바스코샤에서 건조된 배로, 여러 차례 주인을 바꾸며 운항해 왔던 터였다. 당시 선장은 벤저민 스푸너 브리그스(Benjamin Spooner Briggs)라는 37세의 경험 많은 항해사였다. 그는 아내 사라 엘리자베스 브리그스(Sarah Elizabeth Briggs)와 두 살 난 딸 소피아 마틸다(Sophia Matilda)를 동반하고 있었으며, 7명의 선원1등 항해사 앨버트 G. 리처드슨(Albert G. Richardson), 2등 항해사 앤드루 질링(Andrew Gilling), 갑판장 볼크마르 로렌츠(Volkmar Lorenz), 그리고 선원 4명(에드워드 윌리엄 헤드, 보즈 로렌츠, 아리아 마르텐스, 고틀립 구드샬)이 함께 탑승했다. 배에는 1,701배럴의 산업용 알코올(데나투르드 알코올)이 화물로 실려 있었으며, 이는 제노바에서 판매될 예정이었다.
출항 전, 브리그스 선장은 친구인 데이비드 리드 모어하우스(David Reed Morehouse)와 만났다. 모어하우스는 데이 그라티아(Dei Gratia)호의 선장으로, 메리 셀러스트호와 비슷한 시기에 뉴욕을 출발해 유럽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항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브리그스는 가족을 동반한 긴 항해에 대해 약간의 걱정을 내비쳤지만, 배와 선원들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날, 메리 셀러스트호는 차가운 바다 위로 첫 돛을 올렸다.
시간이 흘러 1872년 12월 4일, 포르투갈 아조레스 제도 인근 대서양. 데이 그라티아호는 뉴욕에서 출발한 지 한 달째 항해 중이었다. 오후 1시경,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선원 존 존슨(John Johnson)이 이상한 배 한 척을 발견했다. 배는 규칙적인 항로를 따르지 않고 흔들리며 표류하고 있었고, 돛은 일부만 펼쳐진 채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선장 모어하우스는 망원경으로 배를 확인한 순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배는 바로 친구 브리그스가 이끄는 메리 셀러스트호였다. 배는 예정된 항로보다 훨씬 북쪽, 아조레스 제도 근처에서 발견되었으며, 신호를 보내거나 반응이 없는 상태였다.
몇 시간 동안 신호를 보낸 후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자, 모어하우스는 결국 선원들을 이끌고 메리 셀러스트호에 접근하기로 결정했다. 12월 5일 아침, 데이 그라티아호의 1등 항해사 올리버 드보(Oliver Deveau)를 포함한 몇몇 선원이 작은 보트를 타고 메리 셀러스트호에 올랐다. 갑판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그들은 기묘한 침묵에 압도되었다. 배 위에는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었다. 선장, 그의 아내와 딸, 선원들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선실로 들어가자, 더 충격적인 광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장의 방에는 브리그스의 아내와 딸의 옷가지, 소피아의 장난감, 그리고 선장의 항해 일지와 개인 물품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주방에는 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고, 식탁 위에는 아직 식지 않은 커피가 담긴 잔이 놓여 있었다. 식량과 식수는 6개월 치나 될 만큼 넉넉히 남아 있었으며, 배 내부는 비교적 깨끗한 상태였다. 싸움이나 폭력의 흔적, 피의 자국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배의 나침반은 손상되어 있었고, 항해에 필요한 육분의와 크로노미터, 그리고 구명보트 한 척이 사라져 있었다. 선미 펌프는 분해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으며, 배의 해수선 위로 약 1미터 정도 물이 차 있었다. 그러나 배가 침몰할 정도로 심각한 손상은 아니었다.
화물칸을 확인한 선원들은 1,701배럴의 알코올 중 9배럴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배럴들은 일반적인 오크통이 아니라 알코올에 약한 단풍나무로 만들어져 있어, 내용물이 자연스레 새어나갔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화물칸이나 배 내부 어디에서도 폭발이나 화재의 흔적은 없었다. 선장의 항해 일지를 확인해보니, 마지막 기록은 11월 25일로, 배가 아조레스 제도의 산타마리아 섬 근처를 지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로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어하우스 선장은 이 기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메리 셀러스트호를 지브롤터 항구로 끌고 가기로 결정했다. 데이 그라티아호의 선원들이 최소 인원으로 배를 조종해 지브롤터에 도착한 것은 12월 12일의 일이었다. 지브롤터 당국은 즉시 조사에 착수했고, 해군 법원에서 공식 재판이 열렸다. 초반에는 데이 그라티아호 선원들이 메리 셀러스트호의 승무원을 살해하고 배를 빼앗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당시 해상 구조 보상금(salvage award)을 노린 범죄 가능성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 데이 그라티아호 선원들은 무죄로 판명되었고, 그들은 배의 구조에 대한 보상금으로 1,700파운드를 받았다. 이는 배와 화물 가치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온갖 추측과 이론이 쏟아졌다. 가장 먼저 제기된 것은 해적 습격설이었다. 그러나 배 안의 금품과 화물이 거의 손상되지 않은 점, 폭력의 흔적이 전혀 없는 점에서 이 설은 설득력을 잃었다. 두 번째로는 선상 반란설이 거론되었다. 선원들이 선장을 포함한 지휘부를 공격하고 배를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브리그스 선장은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었고, 선원들도 모두 경험이 많은 이들로 알려져 있어 이 역시 가능성이 낮았다.
세 번째로 주목받은 것은 알코올 증기 폭발설이었다. 화물칸에 실린 산업용 알코올이 새어나와 증기가 가득 차고, 작은 폭발이 일어났을 가능성이다. 이 경우, 선장이 폭발의 위험을 느끼고 가족과 승무원들을 데리고 급히 구명보트로 대피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적 분석에 따르면, 알코올 증기가 갑판 위에서 작은 폭발을 일으킬 수 있었고, 이는 배에 큰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날아가는 정도의 충격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은 폭발만으로 모두가 배를 버릴 만큼 위협적인 상황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네 번째로는 자연재해설이 제기되었다. 지진, 해일, 혹은 해저 화산 폭발로 인해 배가 흔들리며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는 추측이다. 그러나 배에 심각한 손상이 없었고, 당시 주변 해역에서 큰 폭풍이나 자연재해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설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다섯 번째로, 거대한 문어나 바다 괴물, 심지어 외계인에 의한 납치설과 같은 초자연적 이론도 등장했다. 이는 과학적 근거는 없었으나, 사건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 외에도 여러 가설이 제시되었다. 선장이 구명보트를 타고 일시적으로 대피했다가 배와 멀어져 돌아오지 못했다는 설, 배의 소유주나 선장이 보험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배를 버렸다는 보험 사기설, 심지어 데이 그라티아호 선원들이 연루되었다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그러나 어느 이론도 명확한 증거나 결정적인 단서를 제시하지 못했다. 지브롤터 법원의 조사에서도 사건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메리 셀러스트호는 단순히 ‘유기된 배’로 처리되었다.
사건 이후, 메리 셀러스트호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며 운항을 재개했다. 1873년, 배는 뉴욕으로 돌아와 화물을 내려놓았고, 이후 몇 차례 주인을 바꾸며 카리브해와 대서양을 오갔다. 그러나 이 배에는 항상 불운이 따라붙었다. 선장들이 잇따라 사망하거나, 배가 좌초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선원들 사이에서는 ‘저주받은 배’라는 소문이 돌았고, 많은 이들이 메리 셀러스트호에 오르는 것을 꺼렸다. 결국 1885년, 마지막 선주였던 길먼 C. 파커(Gilman C. Parker)는 보험금을 노리고 배를 아이티 근처 암초에 의도적으로 충돌시켜 침몰시켰다. 이 사건으로 파커는 보험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배의 최종 운명은 그렇게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메리 셀러스트호 사건은 해양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은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884년,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은 이 사건을 바탕으로 단편소설 《J. 하바쿡 제프슨의 진술》(The Statement of J. Habakuk Jephson)을 발표하며 사건의 미스터리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이후 수많은 소설, 영화, 다큐멘터리가 이 사건을 소재로 삼았으며, 메리 셀러스트호는 ‘유령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2001년에는 해양 탐사 전문가 클라이브 커슬러(Clive Cussler)가 배의 잔해로 추정되는 유물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으나, 이후 분석 결과 이는 메리 셀러스트호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까지도 메리 셀러스트호 사건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왜 그 배에서 모두가 사라졌는지, 그날 바다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브리그스 선장과 그의 가족, 선원들은 어디로 갔는지, 그 누구도 명확히 답할 수 없다. 혹시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남긴 조용한 흔적선장의 일지, 어린 소피아의 장난감, 식탁 위의 커피잔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지금도 대서양을 항해하는 배들이 어두운 밤바다를 지날 때면, 누군가는 조용히 메리 셀러스트호의 전설을 되새긴다. 어쩌면 그 비밀은 깊고 푸른 바다의 심연 속에 영원히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언젠가 그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를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당신이라면, 그날의 메리 셀러스트호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 답은, 오직 바다만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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